계림(鷄林)의 노거수(老巨樹)이용우계림의 노거수들 쓰러질 듯 서 있다꺾일 듯 굽은 장등 속조차 텅텅 비고억세던 천년 하늘도 텅 비어 허허롭다.나무도 늙어지면 하늘바라 속 비우고 늙어서 속 비우면 철 든다 이른 말이 머잖아 모두 버리고 떠날준비 하란다.풍진의 세월 속에 야차같이 살았어도손 안에 남겨진 것 티끌하나 없지마는한번쯤 고운 단풍잎 물들이고 싶어라.
따개비 한기홍 날씨는 푸르고 사방이 환해서 좋았다. 시내를 벗어나 바다가 있는 북동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도심이 저만치 물러나고 해안초소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제방 길을 달릴 때, 푸른 하늘에 새떼가 날아가는 광경이 보였다. 회색도시 거리에서는 어림없는 눈요기다. 새들은 우두머리새 꼬리 뒤로 여섯 마리씩 두 갈래로 나뉘어 창공을 헤쳐 나가고 있다. 문득 가슴
덜컹덜컹 시골길 완행버스를 타고정영숙 무더위가 갈 생각을 하지 않는 8월 어느 날. 시골에 살고 있는 친척집을 방문하러 길을 떠났다. 버스를 탔다. 완행버스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은 감히 바랄 수도 없는 낡은 버스였다.처음 탈 때는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좌석을 택하여 앉았다. 그 차에 승차한 몇 사람도 나와 같은 방향에 앉았다. 한두 정거장은 그런대로
할머니와 강아지차용길 내가 사는 아파트 인근 공원에서정말 희한한 일을 보고 말았네아 글쎄 강아지가 할머니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휘청거리며 따라가는 할머니는 기력이 쇠잔한 듯이슬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둘러쓴 양모 모자사이로 백발의 머리칼을이내가 내리는 미풍에 하늘거리며 할머니는 그렇게 산책로를 가고 있었네그런데 말이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자세히 보노
세월정동렬나이 탓일까?! 내 기억 모두는 젊은 날들이고, 왜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만 가슴에 가득하다. 좀 더 용기 있고 자신의 감정을 과감하게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아 있다, 이것은 내 천성이고 나의 사람됨의 그릇이 그만큼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이러한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아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이
투정 길정 순 영여명이 트면아내의 발걸음을 좇아산 계곡에서 흐르는 개울 길을 걷는다.인생길을 가듯아내를 두어 걸음 뒤 따르면세월 투정이내겐 조잘거리는 물소리로 들리고세상 투정이맑게 지저귀는 산새소리로 들리니나는 하루를아침 산책의 즐거운 풍류가락으로시작하는 셈이다.[사진설명]1974년 ‘풀과 별’ 등단.부산시인협회상 수상. 저서 ‘잡은 손을 놓으며’ 외
새알머리 아내(1)조재현나는 요즘 여승과 함께 산다. 절간에서 부처와 살아야 할 탈속한 여승이 어찌하여 이 속세의 풍진에 찌든 내 곁에서 머물고 있다는 말인가. 여승은 지금 곤한 잠에 빠져있다. 천사처럼 편안해 보인다. 잠든 그를 무심히 응시하고 있으니 내가 탈속하여 그의 곁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면도로 깡그리 민 듯한 새하얀 머리는 새알을 무색케 할
가고 오는 길은 많다.좁은 길, 넓은 길, 굽은 길 그리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등이 있다.지금 나는 넓은 길을 가고 있다. 길李千 윤석환 똑같은 길이라도느낌에 따라 달라 어제는 힘든 길도오늘은 편안하다. 언제나익숙한 그 길을오고 가는 요즈음 아는 길이 편안하다.새롭게 생긴 빠른 길도 있다는 걸 안다.하지만 묵은 기억이 있는 그 길로 오늘도 나는 간다.[작가
인생의 화양연화강경애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말하는 화양연화! 어느 인생이건 그런 때가 있기 마련이기에 어떤 남루한 인생이라도 아름답고, 살아갈 희망이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언젠가 양조위와 장만옥 주연으로 나온 홍콩영화 ‘화양연화’는 이루지 못할 사랑, 이루지 않고 마음속에 남겨 둔 사랑으로 관객의 마음을 애잔하게 했다. 그들의 사랑은
‘선운사’ 가는 길김 완 용풍천장어 봄빛 끌고 가다숯불 위에 누워 등을 지지는바다 끝 산모퉁이‘선운사’ 대웅전에 삶의 무게 내려놓고‘도솔암’ 지장보살 만나러 가는 길지난 가을 햇살에젊은 스님 그리움 녹아도솔천 붉게 물들이던 상사화간곳없고긴긴 겨울 가슴 여민 동백꽃만봄바람에 옷고름을 푼다.[사진설명]한국공무원문학협회 이사(편집국장)무원문학상 시부문 본상 수상
행복한 삶을 위하여최만섭육십이 넘은 나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질문은 "왜? 당신은 글을 쓰느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은 세상에 대한 애증과 희망과 행복에 대한 필사적인 미련 때문이다.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카드빚에 쪼들린 젊은 아낙이 고층 아파트에서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두 아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그녀 자신도 젖먹이를 품에
빨간 운동화성백원몸이 해를 신었다아침 해는 머리에 쓰고한낮에는 뜨거운 가슴에 품는다하늘이 몸으로 들어왔다몸이 하늘이 되었다눈알들이 몸안을 굴러다닌다어처구니 하나를 몸에 달으니메마른 허공에 꽃이 핀다중심에 피는 꽃은 붉다몸에 핀 꽃은 뜨겁다[사진설명]한국문인협회 회원.오산문학대상 수상.저서 ‘내일을 위한 변명’ 외
흐르는 물처럼김 공 주 이른 새벽 어렴풋이 빗소리가 들린다. 나는 잠결에 일어나 스텐리스 대야를 마당에 내놓는다. 빗소리를 즐기기 위해서다. 팅, 탱, 팅, 탱 대야에 빗방울 부딪치는 소리. 새벽에 듣는 빗소리는 아침을 상쾌하게 만든다. 한때는 빗소리를 좋아해 공 테이프에 그 소리를 녹음해 두고 듣기도 했었다.오후로 접어들자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던 빗소리가
찔레꽃 필 때문인선담쟁이 흐드러진 찔레꽃 보는 것은동무하고 놀던 아이 해거름집으로 돌아가는 그리움 같은 것내 어릴 적 우리집 찔레꽃도울 언니 첫사랑만큼이나 붉었었지담 너머 옆 집 용이눈만 뜨면 내게 놀러왔던 장미꽃 꺾어주면 그 아일 사랑해야 되는 줄 알아그 많은 장미꽃 한 송이 꺾어 주지 않았다시집은 멀리 가야 잘 산다는 앞집 할머니 말씀속으로 숨겨 듣고커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김 한 호 내가 아끼던 꽃나무가 죽었다. 매일같이 보살피고 정성을 다해 가꾸던 꽃나무였다. 그런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잎이 떨어지더니 가지마저 말라 죽고 말았다. 꽃나무도 살아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죽으니 추하다. 더구나 한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나는 꽃을 좋아하여 오래 전부
아가야, 너의 서른에는 무엇을 보았니김주옥 그날 신작로엔 모래먼지가 뒤덮였다 꽃신을 들고 모래를 담고 노래 부르던 고운 생살의 작은 입술단 삼 년 두 손 짚고 뛰놀았지 집채만 한 덤프가 너를 삼켜버린 날 네 인생의 강물은 핏물로 흐르고 흘러 황하가 되었지 짜디짠 사해가 되어 생의 표면 위에 둥둥 북을 울렸지성치 않은 두 발로 너의 동굴 속에 갇혀 얼마나 어
산 너머 남촌엔이재부삶의 길에 잊히지 않는 이정표가 몇이나 될까. 문교부지정 연구학교에서 근무할 때 6학년이 잊히지 않는다. 남자, 여자, 남․녀 혼합 반 3개 반이다. 연구를 위한 의도였으리. “순환운동”이라는 새로운 체력향상 시스템이 교육과정에 도입되고 그 적용이 체력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였다.교육과정에 순환운동 적용을 보려고 교
어둠이 거든 식사백현국 식탁에 앉아 눈을 감는 것도네모서리에 번갈아 앉는 것도그가 즐기는 일이다그릇과 접시의 형태는 맛의 상징이라둥근 것과 각진 것넓은 것과 좁은 것에 맞게 모든 음식을 세팅한다귀이개로 귀를 막는 것은 식사의 시작이다먹을 것을 앞에 놓고 펼치는불편한 논쟁과 금기는 다른 시대의 산물타인의 시선이나 주변 반응에 동조할 이유나 상대가 없기 때문에
무작정 길을 나서다반윤희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오래 된 습관이다. 헌대, 요즈음 통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던 차에 남편과 함께 즐겨 듣던 가요무대를 틀어 보게 되었다. 마침, '가수 조미미와 최헌 추모특집'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한 달 전 구월구일 간암으로 타계한 조미미는 향년
신추문예新秋文藝권예자앞선 이의 손을 잡고 느물느물 사라지는 시간과희희낙락 죽어가는 사람들 엉긴순천만 시사단試士壇갈대들 모여 글을 쓴다주제와 소재를 고르고문장 살살 달래어 가야금 궁서체로 시를 쓴다부드럽고 뜨겁게 격렬하고 냉정하게 쓰고 또 쓴다갈피 사이사이 숨겨 둔 말샅샅이 골라내어 동그라미 가위 세모 그리고 감점 마침내 오랜 심사를 마친 듯후루룩 날아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