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관리의 기본 원칙은 자금의 목적에 맞게 주머니를 나누는 것이며 노후 자금의 운용에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은퇴 가구의 60.5%가 생활비가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여유가 있다’는 응답은 8.7%에 불과했다.

노후 자금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노후 자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다. 특히 요즘처럼 스스로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셀프 부양 시대에는 어떤 식으로 오래 사는 위험을 회피해야 할지, 갑자기 몸이 아플 때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즉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자산 관리의 기본은 여러 방식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노후 자금 설계도 마찬가지다. 기초공사는 목적별로 자금 주머니를 나누는 것이다. 노후 설계 전문가 지철원 위원의 제안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자산의 5%는 저축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임시로 보관하는 주머니다. 수입이 줄어드는 은퇴 이후, 위기관리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미리 위험에 대비한 ‘SOS 자금’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적어도 몇 개월 이내에 써야 할 생활비, 자녀 학자금, 예기치 않은 사태를 위한 비상금 등을 여기에 넣어 관리한다. 이런 자금은 필요하면 언제든 꺼내 써야 하므로 은행 예금이나 CMA 같은 수익률은 낮아도 원금 손실의 우려가 없는 저축 상품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다만 수익률이 극도로 낮은 주머니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묵혀둘 필요는 없다. 전체 자산의 5% 정도를 저축 주머니에 묶어둔다. 일반적으로 2인 가구의 최저생활비는 월 200만원 정도다. 이를 기준으로 3~6개월분의 생활비 600~1200만원이 적당하다.

두 번째, 매달 생활비는 지출 주머니에 넣는다. 은퇴 이후에는 연금 외에 고정 수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지출을 줄이는 것이 노후 자금 관리의 기본이다. 그러나 아껴 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합리적 지출을 위해 나의 자산 보유 현황을 담은 재무 상태표와 지출과 저축 규모를 알 수 있는 현금 흐름표를 작성해 지출 주머니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자. 이를 통해 공과금이나 아파트 관리비 등 고정 지출은 자동이체 통장으로, 매달 써야 하는 돈은 체크카드 통장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 건강 리스크를 대비한 보험 주머니다. 이 경우 보장성 보험이 유용한데 보험료는 소득의 10%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정하는 것이 좋다. 수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최소의 비용으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의료 비용을 마련하는 실손보험, 유족의 생활 자금을 준비하는 종신보험 등 용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해 조건에 적합한 상품을 고르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걱정하는 노후 질환으로 꼽히는 치매를 비롯해 암, 심혈관 질환 등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을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좋다.

네 번째, 투자는 트레이딩 주머니다. 투기 주머니 또는 대박 주머니라고 할 수 있으며 주식, 채권, 선물·옵션 등의 개별 종목을 단기에 사고팔아서 수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레이딩 주머니는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많은 은퇴자가 이 트레이딩 주머니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대할 수 있는 수익도 큰 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운이 좋아 수익을 많이 냈을 때는 부부가 같이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지만, 의외의 상황을 만나 큰 손해를 보는 경우에는 체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주머니가 노후 생활에 타격을 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해서는 곤란하다. 자산의 20% 이상을 이 주머니에 넣어서는 안 된다.

다섯 번째, 노후 파산 막는 연금 주머니다. 장수 리스크와 노후 파산을 막기 위한 필수 주머니다. 목적 자금 주머니 중 노후 생활 자금 주머니와 연결된다. 연금 주머니는 생활 자금을 마련한다기보다는 생활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다. 생명보험사의 연금저축, 연금보험, 변액연금보험은 종신으로 지급되는 연금이어서 오래 생존할수록 이득이 커진다. 갑자기 사망하는 위험에 대비할 때는 종신보험, 생각보다 오래 사는 위험에 대비할 때는 연금보험에 가입하면 된다. 다만, 모든 노후 생활 자금을 연금보험으로 마련할 필요는 없다. 연금보험에 납입한 자금은 유동성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입하는 국민연금이 훌륭한 종신연금이므로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개인연금보험에 가입하면 된다. 내 집을 종신연금으로 전환하는 주택연금도 권장할 만한 대안이다.

여섯 번째, 용도에 따른 목적 자금 주머니다. 내가 보유한 자산을 자금의 목적에 맞게 나누는 것이다. 인생 2막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꿈 주머니’ ‘결혼 자금 주머니’ ‘노후 생활 자금 주머니’ ‘문화 생활 주머니’ ‘취미 활동 주머니’ 등이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주머니를 설정하면 된다. 다만 우선순위가 있다. 노후 생활 자금 주머니를 가장 먼저 꾸린 다음, 자녀와 꿈 등 나머지 주머니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목적 자금은 비교적 장기로 운용할 수 있어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데도 적합하다. 이 주머니를 운용할 때는 직접투자보다는 펀드 형태의 간접투자를 활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주머니 안에 주머니를 갖는 효과가 생겨 안정성이 더 높아진다. 정년 후에는 목돈을 투자하고 매달 생활비를 꺼내 써야 하기 때문에 변동성이 큰 자산에 큰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주식형 펀드보다 채권형 펀드 비중이 높은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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