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사)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회장, 서울교원문학회 자문위원(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월간 문학세계 편집주간시집 : 고향생각 한 잎, 꼭 끼는 삶의 껍질,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지워지지 않는 흠집 외
약력: (사)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회장, 서울교원문학회 자문위원(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월간 문학세계 편집주간시집 : 고향생각 한 잎, 꼭 끼는 삶의 껍질,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지워지지 않는 흠집 외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여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그의 의견을 좇는 것이 양보다. 문제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기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쫓는 것도 양보라고 알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다. 양보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바보스러울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하거나 자기 스스로 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다. 아니면 사회적인 일반 상식을 너무 몰라 나보다 나은 모델을 정하여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기고 무엇이든지 보고 따라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하고나서 얼마 안 되어 필자는 머리에 도장병이라는 부스럼을 앓았다. 학교에 나가는 것을 중단하고 머리 치료를 위하여 상당 기간을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고 그림이나 크레용으로 그리다가 입학한 입장에서 학교수업을 받지 못한 채 집에 있다가 치료가 끝나고 다시 학교에 나갔을 때에는 수업진도가 한참 뒤떨어져 있던 나는 시험이라는 게 무언지도 모르고 시험을 보았다. 객관식문제 조차도 아무 것도 모르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시험을 보는지를 모르는 나는 옆에 아이 것을 보고 컨닝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한 아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앞에 아이나 뒤 아이 것까지 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질겁하시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나무라셨다. 볼 수도 없고 그냥 되는대로 답을 달았으니 점수는 형편없이 나와 성적은 말할 수 없이 나빴다.

남들은 백점도 맞는데 왜 나만 그래야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다고 숙제를 내면 같은 글씨를 반복해서 쓰는 것들을 모양만 같이 써서 내는 것이었다. 부모님들은 모두 바쁘셨고 할머니하고 있었지만 도움이 되진 못하셨다. 그림은 잘 그린다는 평가를 같은 반 엄마들한테서 받을 수 있었다. 옆에 짝꿍 아이가 미술시간에 그림을 잘 못 그려서 쩔쩔매고 있으면 도와주던 것을 보고 그려셨을 것이라 여겼다. 그 아이는 동작이 빨라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라도 잘하면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보다 조금 나은 편이었다.

그림을 그려주다 보니 내가 다른 아이들과 부딪칠 때면 내 편이 되어주어 힘이 되었다. 그러더니 미술시간에는 조금 그려주는 걸로 식성이 차지 않아 내가 그린 그림을 제 이름을 써서 내달라고 하였다. 그 아이 그림은 어차피 내가 그리던 그림이었으니 나는 똑같은 그림을 두 장 그리는 폭이었다. 내편이 되어 주는 게 고맙긴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하자는 대로 하고 싶진 않았다. 강요에 의해 내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왜 싫다고 말하지 못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겁이 났던 것이다. 그 것은 양보가 아니고 시키는 대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양보라면서 마음을 편하게 갖기로 했다. 내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라 여겨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비겁한 내가 많이 미웠다. 거절한다 해도 싸우면 몇 대나 더 맞겠냐는 생각에 미쳤을 때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릴 수도 없었다. 2학년 올라갈 때까지만 지금처럼 지내자고 작정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학이 지나고 얼마 안 되어 담임 선생님께서 대신 그려준다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부르셨다.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 아이는 담임 선생님께 안 그랬다고 그러면 고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얻어 맡더라도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의 싸움은 별 게 아니었다. 싸움을 잘 한다는 것은 말로 제압하는 것과 정정당당하게 잘못을 따지는 것이었다.

나는 잘잘못을 따지면서 먼저 공격을 하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도망을 치면서 말로 겁을 주고 있었다. 더 이상 자기를 괴롭히면 그냥 안 둔다는 욕설을 던지면서 위기를 모면하려 하였다. 결국 나는 그의 그림을 그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아이를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나의 편에 서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나를 알아주면서 공부도 조금씩 하면서 성적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알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하여 나는 그에게 마안하였다.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하여 보상하고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에게 그려주던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했다. 다 그려주진 않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그는 그렇게 지속하다가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의 그림 그리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를 학급 미화부장을 하라고 하셨지만 내성적이었던 나보다는 활발한 그가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의 양보 덕에 그는 학급 미화부장이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 기뻐하였다. 나도 그가 좋아하여 고마웠다.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정의 편에 서있다는 순리를 믿게 되었다. 싸움을 잘하는 아니가 주먹 하나 휘두르지 못하고 물러선 사실에 대하여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가 정도를 넘기고 너무 무모하게 그림을 그려달라는 욕심이 지나치다보니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도 잘못은 있다. 처음부터 그려달라는 걸 거절하지 못한 것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불익을 당하면서도 감수하면서 모면하려했던 겁쟁이였다. 무사하리라고만 여겼던 일이 들통이 나면서 사면초과에 직면하게 되면서 자구책을 구한 것이었다.

그나마 견디지 못하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쥐가 고양이를 물게 된 것과 다를 게 없는 모험을 걸었던 것이다. 우유부단했던 나로 인하여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의 자존심을 허물어뜨린 것은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나는 양보라는 처방을 동원하여 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지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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