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열전> 제공

“다른 작품도 모두 그렇지만, 이 작품만은 정말 전력을 다했어요. 쉴 새 없이 달렸죠.”

배우 이석준(48)은 요즘 그를 걱정하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한창 상연 중인 연극 <아들(Le fils)> 때문이다. 연극열전8의 세 번째 작품인 <아들>은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가족 3부작’ 중 <아버지>, <어머니>에 이은 마지막 작품이다. 우울증에 걸린 아들 니콜라(강승호·이주승)를 둘러싸고 엄마 안느(정수영), 그리고 이혼 뒤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빠 피에르(이석준), 피에르와 재혼한 소피아(양서빈)는 그를 깊은 우울 속에서 끌어내기 위해 100분 내내 애쓴다. 그러나 결말은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고, 무대 위 배우들은 극이 끝난 뒤 커튼콜까지 치밀어 오르는 슬픔에 휩싸여 박수를 받는다.

120분의 무대 위에는 내내 긴장감이 휘몰아치고,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딛는 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과 깊은 슬픔이 배우들을 짓누른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눈물을 터뜨린 채 극을 마무리하는 피에르 역을, 매일 같이 원 캐스트로 소화하고 있는 이석준에게 걱정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23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석준은 “그 어떤 공연보다도 ‘어떻게 이걸 원 캐스트로 하냐’ 이런 얘기를 제일 많이 듣는 것 같다”며 웃었다. 실제로 <아들> 개연을 앞두고 이석준은 ‘지금까지 해온 극 중 가장 진 빠지는 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힘든 극을 많이 했지만 <아들>은 시작부터 도입부가 없이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해서 숨 쉴 부분이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걱정했던 게 <킬 미 나우>였고, 몸이 힘들었던 건 <M. 버터플라이>였다. 하지만 그 극들은 힘든 부분으로 가는 과정 전에 밝은 부분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들>은 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외줄을 타는 작품이다. 이석준은 “처음 대본을 읽을 때부터 불안, 긴장감이 있었다. 지금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아이(니콜라)가 너무 가는 선 위를 걷고 있으니까, 배역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다른 식으로 틀거나 워딩 하나만 바꿔도 휘청거린다”고 묘사했다.

▲ <연극열전> 제공

- 아버지와 아들, 누구의 시선을 따라갈 것인가

이석준이 연기하는 피에르는 관객들에게 가장 미움 받는 캐릭터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석준은 조심스럽게 답을 내놨다. “공연을 본 관객들 중에 니콜라의 입장에 놓여본 젊은이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한참 말을 고르던 이석준은 “우리 팀 내에서도 리딩을 하고 또 연습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만 해도 젊은 배우들은 ‘나 정말 피에르를 이해 못하겠다’고 하고, 나나 어른들은 ‘이 이상 뭘 더 해줄 수 있나’고 고민스러워했다”며 “소위 말하는 ‘옛날 꼰대 마인드’로 접근했었던 거지. 그러다가 점점 ‘대체 어떤 말로 이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석준이 말하는 <아들>이라는 극의 좋은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아버지(피에르)와 아들(니콜라), 양 쪽의 밸런스가 다 갖춰져 있다. 보는 사람이 누구의 시선을 쫓느냐에 따라 작품의 색깔이 완전히 바뀐다”고 설명했다. “병에 대해 무지했다는 측면을 배제한다면, 피에르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사실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느냐에 따라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말한 그는 “세대 간에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렇게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른의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그리고 서로가 생각하는 위로와 공감을 어떤 말로 해줄 수 있을까 찾아봤다”고 돌이켰다.

확실한 건 이석준 본인도 아직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는 “제작사에서 이 작품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말을 적어달라고 했다. 다른 작품은 늘 쉽게 썼는데 이 작품은 너무 어려웠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같이 찾아달라고 썼다”며 “지금처럼 피에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도 좋고, 공감도 좋고. 모든 반응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 답을 찾아가는 것 같아 의미있다”고 미소를 보였다.

김희선 객원기자

<인터뷰 ② ‘대학로 아들 부자’ 이석준이 말하는 두 아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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