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의 ‘한반도 역사 왜곡’ 발언에 대해 외교부가 어떤 항의 표명도 하지 않는 것은 “제반 사항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언급했다. 역사 왜곡 행위가 잘못됐다고는 보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항의하지 않는 외교적 대응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가 중국에는 문제가 있어도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강 장관은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장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외통위 소속 박진 의원(국민의 힘 강남 을)은 “시진핑 주석의 발언이 논란이라며 그는 위대한 항미원조가 미 제국주의의 침략을 억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의원이 “명백한 역사 왜곡이죠?”라고 묻자 강 장관은 “우리 입장으로서 그렇다”고 답했다. 굳이 ‘우리 입장으로서’라는 조건을 붙였다.

박 의원은 “그런데 왜 우리 외교부는 우리와 직결된 중국의 역사 왜곡행위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 논평이나 유감 표명 하나 없느냐”고 지적했다. 강경화 장관이 “발표했다”고 하자 “기자가 물어보니까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 아니냐”면서 “대체 왜 외교부는 이런 중국에 눈을 감느냐”고 했다.

강 장관은 이날 국감에서 시 주석의 역사 왜곡 연설과 관련해 외교부의 입장을 두 차례 ‘발표’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외교부는 자발적으로 어떤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정례 브리핑, 그리고 24일 토요일 저녁 기자들의 질문에 구두로 답변했을 뿐이다. 외교부는 구두 설명은 활자화한 어떤 형태로도 발표하지 않았다.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 SNS 등 어디에도 시진핑의 역사 왜곡에 대한 입장문은 없다.

강 장관은 “제반 사항을 고려했을 때 우리 원칙적 입장만 표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역사 왜곡 행위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했지만, ‘언론에서 질문하면 원칙적 입장만 답하자’는 정도의 대응책으로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6·25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강 장관은 “안다”고 하면서 양옆에 앉은 이태호 2차관과 최종건 1차관을 향해 고개를 돌며 “몇 명이지? 300백만? 100만?”이라고 물으며 답을 구했다. 그러다 차관 중 하나가 300만이라고 하자, 강 장관은 “300만 정도”라고 말했다가 다시 급히 “100만 정도”라고 말을 바꿨다.

박 의원은 “최소 민·군 160만의 희생자가 있었다”면서 “이렇게 엄청난 우리의 희생을 부른 전쟁을 중국 주석이 미 제국의 침략이고 중국이 이 확장을 억제했다며 통째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데, 왜 우리 대한민국 외교부는 아무런 논평을 안 내고 있는 것이냐”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외교부에 역사의식과 영혼이라는 게 대체 있느냐”고 꼬집었다.

그러자 강 장관은 “예, 당연히 외교부는 역사관, 정체성, 국익을 위해 일하는 부서”라면서 “제반 사항을 고려해 논평 발표 여부와 그 수위를 정한다”고 말했다. 중국 주석의 발언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알지만, 국익을 위해 일하는 외교부로는 제반 사항을 고려해보니 항의 표명하지 않는 것이 ‘국익’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외교부가 ‘BTS(방탄소년단)’보다 ‘국익 외교’를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의원은 “BTS가 한국전 70주년을 맞아 ‘우리는 양국(한국과 미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BTS보다 못한 외교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미 국무부는 우리 외교부가 할 말을 했다”면서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마오쩌둥의 지원으로 남한을 침공했다. 자유 국가들이 반격하자, 중국 공산당은 압록강을 건너 수십만명의 병력을 보내 한반도에 참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발표를 공식 SNS에 올렸다”면서 “외교부는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했다. 외교부는 언론의 지적에 뒤늦게 “북한의 남침”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끝내 “중국의 지원” 등 중국의 역할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미국이 오히려 나서 중국의 역사 왜곡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지적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에 강 장관은 “한미의 역사 인식은 같다고 본다”면서 “발표 방식, 소통 방법에는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정작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은 침묵하고 우리를 위해 싸운 미국은 단호히 대응한다”면서 “이런 차이가 계속 드러나는데 한미 동맹이 제대로 작동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은 위기를 맞고 손상하고 있다”면서 “우리 대통령은 이런 와중에 종전 선언만 외치고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 주장에 미국과 국제사회는 등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비핵화 언급 없이 종전선언만 제안한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지지 입장을 밝힌 나라가 어디 단 하나라도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강 장관은 이에 “비핵화와 종전선언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라며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현 정부는 종전선언을 ‘입구’라고 보는 것 아니냐”면서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비핵화를 견인하겠다 이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의 올 유엔 연설은 이전과 달리 비핵화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한반도 종전선언만 강조해 비핵화 외교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한미 외교가에서 나왔다. 특히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연설은 북한의 우리 해수부 공무원 총살 만행에도 강행 발표돼 논란을 불렀다.

박 의원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왜 한국을 패싱(건너뛰기)하고 있겠느냐”면서 “같이 대화할 근거,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 한미일 국방 장관 회의에 빠지고, 미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쿼드에는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2+2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는 열린 적도 없고, 한미 워킹그룹은 2월 이후 열리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데다, ‘동맹 대화’라는 한미 국장급 회의를 만들려다가 미국에 바로 면박을 당했다”고 했다.

이어 “전시 작전권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며 “정부는 임기 중에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지금 어떻게 됐나 물 건너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미 연합훈련도 못 하고 실사격 훈련도 못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전작권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며 “한미 동맹이 표류하지만, 외교부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박 의원은 “강 장관은 서울에서 한미 관계 잘 되고 있다고 하지만, 워싱턴에서 한미 관계 총사령탑인 이수혁 주미 대사는 오히려 동맹을 훼손하고 있다”면서 “이래도 잘 되고 있다고 할 것이냐”고 꼬집었다.

강 장관은 “지적 사항을 이해한다”며 “어떤 특정 부분은 공감하지만, 한미 동맹이 표류한다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박 의원은 “대한민국 외교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면서 “미중 신냉전이 격화하지만 한국의 전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을 부탁한다”며 “경제 실패는 나라를 어렵게 하지만, 외교 실패는 나라의 명운을 결정짓는다”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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