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장수시대 - 어떻게 살까?”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교육삼락포럼’이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한국고령사회연구원장 김성순 박사가 주제 강연을 맡았는데, 그는 고독을 관리할 줄 아는 노년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자기는 가끔 고독을 즐기기 위해 그림자를 집에 두고 혼자 산엘 간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야, 멋지다! 나도 따라해 보자.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림자의 의미와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했다. 이때 그림자는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체의 형상이 아니고, 인간의 영혼, 자아 정체성, 희(熹)노(怒)애(愛)구(懼)애(哀)오(惡)욕(慾) 의 감정, 살아온 족적, 잡다한 세상사 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독일의 작가 아델베르트 포 사미소(Adelbert von chamisso)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그림자를 팔고 살수 있다는 황당무계 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그림자를 팔고 그 대가로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행운주머니를 받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림자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생각하고 팔아버린 후에는 그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견딜 수 없는 고독을 맛보고, 애인마저 떠나보내게 된다. 돈 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은 주인공은 그림자를 팔았던 일을 후회한다.

이 소설에서 ‘그림자’는 돈과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과 양심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라도 자기의 영혼이 투영된 그림자를 숙명적으로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인간은 각기 자기의 그림자를 숙명처럼 안고 살아야하지만 가끔은 그 그림자의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장자(莊子)라는 책에 “옛날에,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해 그것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 그림자를 피하려고 더 빨리 뛰었지만, 그림자가 같은 속도로 따라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사람은 뛰고 또 뛰다가 결국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때 사물의 그림자는 그늘에 들어가 쉬거나 빛을 피하면 바로 없어진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의미하는 그림자는 사람이라는 사물의 그림자가 아니라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와 같은 인간의 외면적 물량주의와 내면적 탐욕을 의미한다.

삶을 오도하는 이런 그림자는 우리의 삶을 그늘지게 한다. 이때는 그림자를 과감하게 벗어 던져야 한다.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그림자에는 과감히 벗어 던져야할 그림자도 있고, 평생을 꼭 껴안고 살아가야할 그림자도 있다. 그런데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할 그림자도 가끔은 벗어던져버리고 벌거숭이, 자연인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크고 작은 구속으로부터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으로 살아보지 못하였다. 더더구나 그림자를 집에 두고 나 홀로 산에 가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일이 없다. 나도 언제인가는 그림자를 집에 두고 홀로 산에 올라 고독을, 인생을, 죽음을 생각하며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싶다. 그러한 산행은 정말로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다. 최근에 와서 나는 그림자처럼 달고 살든 휴대폰을 가끔 집에 두고 다닌다. 호주머니가 불룩하여 휴대폰을 넣고 다니기 불편할 때, 예배를 보러가거나 강연을 들으러 갈 때와 같이 휴대폰을 꺼 놓아야할 상황에서는 아예 집에 두고 갈 때가 있다.

그때의 해방감이라니… . 나이 들고 보니 촌각을 다투는 급한 연락이 올 때도 없고, 아내가 오해할만한 문자메시지나 전화를 할 사람도 없고, 간혹 오는 연락도 스트레스를 덜어주기보다는 보태주는 경우가 있다 보니 휴대폰을 두고 나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처음 깜빡 잊고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갔을 때는 적지 아니 불안하였는데, 지금은 휴대폰을 두고 나가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급하거나 중요한 내용이면 문자메시지를 남길 것이고, 내용은 나중에 집에 돌아와 확인하고 연락을 하면 된다. 앞으로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다니듯이 가끔은 그림자를 집에 두고 다닐 생각이다.

그림자 없는 나 홀로 산행도 실행에 옮겨볼 것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세상의 모든 욕심과 갈등은 물론 영혼까지 내려놓고, 그림자도 없이 휘적휘적 한가로이 산을 오르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인간세상, 소풍 끝나는 그날까지… .

[약력]

(전) 문교부 편수국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교원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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