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 후 말똥말똥 자리를 지키는 일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춘곤증에 겨워 눈꺼풀이 사돈, 사돈 하면 정신조차 가뭇해져 얼굴이 책상에 입을 맞추다 못해 아예 동침을 한다.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하면 낫살 먹은 체면이 구겨지니 이쯤에 바람을 쏘여야 한다. 사무실 뒤편 허접한 그곳은 앞이 확 트여 저 멀리에 있는 산바람을 몰아다 주며 눈요기도 시켜 준다.

그새 모내기한 논에 개구리밥이 동동 떠서 연둣빛 고운 떡살을 빚어 놓았고 두 손을 비벼가며 만들어 놓은 손바닥 밭 배미에도 속살이 다 찼다. 농부는 신의 정령일까. 그의 예술성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딸랑딸랑하며 요령 소리가 들린다. 철 뚝 길 주변에서 이 소리가 나면 기차가 지날 것이라는 신호이다. 조금 있자니 ktx가 천천히 가속하며 달려간다. 익산역을 막 출발하였을 것이며 종착역은 서울일 것이다. 몇 량이나 달고 달릴까 궁금하여 어림셈을 세다가 그만 그리움을 세었다. 집을 못 간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이의 혼사를 치르고는 못 뵈었으니 여러 달이 흐른 셈이다. 내 집이 있음에도 가끔은 집이 그리운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내 집에 사랑하는 가족을 알토란 같이 만들어 놓고선 왜 집이 그리운 것일까.

육탈한 노인을 닮아 아주 작아진 그 집, 그 안에서 적적한 하루를 서쪽 하늘의 산 말랭이 아래로 자꾸 내려놓는 삶을 살아내는 내 탯줄자리가 있어 그리운 것일까. 그래서일까. 아는 이 없는 낯선 타지에 닻을 내린 지 벌써 24년째다. 그때 분기탱천하여 뒤도 안 돌아 볼 것처럼 아랫동네로 내려왔었다. 못마땅한 사위를 맞아드리고 아버지는 늘 마뜩찮아 했다.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꼴이 가련해진 딸년 사는 풍신이 보기 딱해 육아를 이유로 사위네 동네로 쫓아내듯 내려보내고 참 많이 아팠을 터이지만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무지막지한 원망을 했었다. 대문도 없어 찬바람이 창호지를 미는 시골 방에서 원망이 그리움이 되는 날, 시골 우체국 여직원에게 집으로 가는 전화번호를 디밀고는 초라한 전화 부스 안에서 어머니와 재회하곤 했다. 그 당시 산골 동네는 우체국 교환양이 연결해주는 수동식 전화기가 있었다. 전화기 옆에 달린 손잡이를 마구 돌린 다음 ‘여보세요, 00번 연결시켜 주세요.’하고 통화 신청을 한 후 기다렸다가 통화를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편 같은 장면이다. 아장대는 아이 손을 잡고 우체국으로 가는 내내, 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내내 철없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

리워서, 집에 가고 싶은 나머지 찌질 대는 어미를 보고 아이는 입을 삐죽대다 기어코 울어대면 둘이 쌍나팔을 불어대는 바람에 시골 동네 아낙들의 우스갯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시간은 마음을 녹여놓는 재주가 있었던지 차츰 원망이 가셔지고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기차를 두 번 갈아타는 번거로움에도 흥분되곤 했다. 내게 있어 기차는 집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으나 내 핏줄을 연결해주는 탯줄과도 같아서 기차표를 끊고 개표구를 지나 기차가 다가오는 홈으로 가는 내내 엄숙한 격식을 차리는 듯 행동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차창 밖으로 익숙한 고향의 지명이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하면 반가움에 가슴이 충만해져서, 말은 사라지고 눈이 자꾸 열리는 바람에 훌쩍거리다가 남편에게 혼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내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떠나지 않아 애를 먹어야 했다. 젖을 빨리 떼고 어른이 되라고 어머니는 과년한 딸의 등을 도닥이셨지만 그게 싫어서 투정을 부리다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설렘과 충만, 아쉬움이 철길처럼 평행선을 그어놓아 다시 그리워지게 하나보다. 기적 소리를 내며 출발하는 기차의 앞과 뒤편에 양방향으로 향해있는 기관실을 달고 달리는 기차를 보니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만 같다. 누구나 삶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있고 또 다른 삶을 이어 가는 교차지점이 있으며 마지막 짐을 내려두는 종착점이 있다. 그러나 출발점이 종착점이 되며 종착점이 출발점이 되지 않는가. 태어남과 죽음이 그렇고 만남과 헤어짐이 그러하며 그 사이로 살아내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또한, 내가 기찻길처럼 이어진 탯줄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어 더듬듯 집으로 가는 것도 어찌 보면 출발점에 대한 끈끈한 회귀일 수도 있으나 후일 나의 모습이 될 종착점에 대한 미리 보기를 하러 가는 것은 아닐까. 그곳에서 미래의 나를 만나며 내려둘 것과 거둘 것을 느끼고 새로운 에너지를 안고 올 수 있는 힘 말이다. 나는 집으로 가는 이유를 누군가 물으면 어머니의 젖을 먹으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가는 길에 섰다 오면 콧노래를 흥얼대며 희망에 가득 찬다. 내일은 역(驛)에 가서 집으로 가는 1인 기차표를 살 것이다. 남편은 승용차를 가지고 가자고 불평하지만 가끔은 기차를 탄다. 그럴 땐 대게 혼자 여행을 한다는 뜻이다. 이만큼을 살아도 아직 섞고 싶지 않은 나만의 정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 되돌아 집으로 오는 그곳에 하나의 포석을 두어야 회귀하는 일이 어렵지 않기 때문일까. 마치 그나 내가 서로에게 인생의 출발역이 되기도 하고 종착역이 되기도 하듯 삶의 역사(驛舍)를 두 곳에 두고 저기 달리는 기차처럼 기관실을 맨 앞과 맨 뒤, 양방향으로 걸고는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딸랑딸랑 요령 소리가 들리면 모두 일시 정지하고 각자 살아가는 길 위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지 않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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