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요소이다. 건강한 혈액은 혈관을 타고 소화기관인 위, 장 등에 영양공급이 골고루 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탁한 혈액은 면역기능을 저하시키고 때로는 혈전을 유발한다. 일단 혈전이 유발되면 심장 근육이 심각한 손상을 입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국가에 투영해 보면 어떨까. 인간의 몸은 국가에, 지방자치는 혈관에, 공무원은 그 안에 흐르는 혈액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혈액에 해당하는 공무원이 업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면 지방자치는 원활이 이뤄지며 국가의 안녕에 기여할 것이고, 보신주의나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된다면 제도나 정책은 제역할을 하지 못하여 결국 국가의 쇠퇴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지자체 공무원들의 공직기강은 탁혈(濁血)처럼 변색돼가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올해 2월 15일 감사원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계약관련 토착비리 점검’에 따르면 단체장이 인사권을 남용해 특정인을 승진시키거나 법인카드를 며느리에 건네 사용토록 하는 등 38건의 위법사례가 적발됐다고 한다. 도봉구의 A 전 구청장은 재직당시 자신의 측근인 B과장의 승진요구에 근무평가를 허위로 조작하거나, 뇌물공여죄로 징계대기 중인 직원 C씨의 징계의결요청을 무시하고 훈계로 끝내, B과장과 직원 C씨는 2008년과 2009년에 승진했다. 또 지방 보건소의 한 직원은 법인카드를 며느리에 건네 4천6백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계대기 중이란다. 공무원에게 업무추진비 또한 호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인식되는 듯 싶다. 상품권을 천만원 단위로 구매한 뒤 부구청장을 비롯한 간부직원, 시의원 등에 뿌린 은평구, 중구의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이유에서다. 

감사원 발표뿐 아니라 2월 16일 한 매체가 보도한 ‘내근 공무원들도 출장비 챙겨갔다’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구청을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2011년 출장여비 지급현황자료’에서 구청 공무원 2만741명 가운데 99.4%인 2만621명가 지난 한 해 동안 1인당 320만여원의 출장여비를 타갔다. 그런데 문제는 직위나 업무 종류, 실제 출장 여부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같은 액수의 출장여비를 받았다는 점이다. 출장여비는 최대 출장 일수를 채웠을 경우 월 24만원에서 30만원까지 받을 수 있으나 중랑구만 해도 한 사람당 월평균 29만8816원을 출장여비로 지급받았다. 25개 구청 출장여비의 총액은 650억여원에 달한다. 구청업무는 특성상 장거리 출장이 드물다는 점에 미뤄보아 이같이 거대한 액수가 ‘나눠먹기식’의 관행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국민의 탄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또 19일에는 용산구에서 박장규(77) 전 구청장이 2008년 1월 용산구 신계동 재개발 지역 아파트 분양 과정에 관여해 구청장 선거 운동을 도와준 지인의 아파트 분양가를 일반 분양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 받을 수 있도록 조합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게다가, 재개발 과정에서 구청장뿐만 아니라, 조합관계자와 시공사 직원, 인허가 공무원 등 조합 업무와 연관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한다. 또한 2007년부터 2009년 재직 당시 4급 서기관 2명 등 공무원 10명의 업무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쇄신’이 필요한지 난감할 뿐이다.

 
최근 국가의 대소사를 모두 관장하는 위치에 있는 대통령조차 친형인 이상득 의원 보좌관 비리의혹,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효재 전 정무수석 등 측근의 잇따른 비리연루로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의 뜻을 밝혔다. 헌데 서민의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해야하는 구청 공무원이 업무는 뒷전이고 개인의 입신에 대한 염려만 하고, 국민의 혈세를 쌈짓돈으로 치부하는 등 썩은 기조만 유지할 뿐이라면 지자체를 비롯, 국가의 앞날은 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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